2020년 12월 8일 (화) QT / (막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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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제일교회 작성일20-12-08 04:59 조회3,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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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화) 마가복음 11장 1~11절 [나귀 새끼, 겸손한 왕의 오심]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 도움말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2절): 구약에서 나귀는 왕이나 메시아와 연관되었다. 야곱은 유다지파 에서 탄생할 왕의 치세를 나귀와 관련해 예언했으며(창 49장 11절), 솔로몬도 즉위식에서 나귀를 탔다(왕상 1장 38절). 스가랴는 장차 도래할 ‘공의와 평화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슥 9장 9절). 한편 예수님께서는 ‘아직 아무도 타 보지 못한’ 나귀 새끼를 언급하셨는데,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께 특별한 용도로 드려진 동물들에 적용된 규정이었다(민 19장 2절). 예수님께서 타신 나귀 새끼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실 사역에 대한 복선이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9절):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히브리어다. 구약에서 이 구호는 주로 왕에게 돌려졌는데(삼하 14장 4절), 이는 예수님에 대한 무리의 이해를 반영한다.
2) 해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예루살렘은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상실한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정복당한 이후, 연이어 등장한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지배한 제국의 통치자들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화려한 백마를 타고 도시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는 진정한 평화가 예루살렘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토록 평화를 갈망하던 도시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어린 나귀는 제국의 통치자들과는 전혀 다른 그분의 치세를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황제가 폭력으로 일군 거짓 평화와 예수님께서 공의로 이룩한 진정한 평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우리에게도 요청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거대한 자본과 권력, 쾌락을 약속하는 황제의 복음입니까? 아니면 죄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예수님의 복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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